[한마당] 상하이 임정 지킨 기업들
작은 환전소에서 출발해 유럽 최고 은행업을 일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후원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을 후원해 많은 걸작 탄생에 일조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09년 목성 주위의 4대 위성을 발견한 뒤 ‘메디치의 별들’로 명명했다. 메디치 지원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메디치는 성당, 미술관 등 지금은 유명해진 각종 문화 관광·유적지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메세나)의 시조 격이었다.21세기 들어 유럽에서 중세 유적지의 보수 필요성이 커지자 메디치식 후원을 벤치마킹한 기업들이 등장했다. 2000년대 초 시작된 프랑스 베르사유궁 복원사업엔 건설업체 뱅시가 1200만 유로(약 203억원)를 지원했고 BNP파리바은행도 동참했다. 보석·명품 전문 업체 불가리는 2011년 로마의 유명한 스페인 광장을 개보수하는데 150만 유로를 제공했다. 2020년 코로나19에 따른 관광업 타격의 돌파구도 기업의 후원이었다. 로마시는 수천개의 이탈리아 기업들로 구성된 협회와 계약을 맺고 후원 유적지를 기업에 매칭시켜줬다.우리나라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정부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해외의 의미있는 유적지 복원 및 보존에 앞장섰다. 효성은 중국 저장성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 유적지 보존 사업 후원을 십수년째 이어갔다. 라이엇게임즈, LG하우시스(현 LX하우시스)는 미국 워싱턴 DC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에 힘을 실었다.이재명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자칫 한국 독립 운동의 심장부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삼성과 현대차그룹 덕에 넘긴 사실이 이번에 알려졌다. 1990년 원형이 크게 훼손된 청사를 삼성물산이 거주자 이주비까지 부담하며 복원시켰다. 현대차그룹은 재개발 계획으로 청사가 없어질 가능성이 커지자 2000년대 상하이시와 계속된 대화를 통해 설득했다. 민간외교가 우리의 역사를 지킨 것이다. 한국판 메디치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세욱 논설위원